아름다운 삶

충무공 이순신의 칼의 노래

dansseam 2007. 3. 25. 17:40

충무공 이순신에 대하여
충무공 이순신 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지극한 충성심과 위대한 통솔력으로 조국을 위하여, 침략하는 왜구를 물리치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는 매우 강인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굳이 여러 역사서를 보지 않더라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로도 추앙받고 있는 이순신, 사실 우리의 반만년 역사중에서 가장 훌륭한 장군을 한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무 주저함없이 이순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단지 100원짜리 동전에 비춰진 친근함이나 모회사 선전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이미지를 빌리지 않더라도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고 현재까지도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위대한 군인이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순신을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거북선을 만들고, 적의 쏟아지는 총탄에도 후퇴하지 않고 선봉에 서서 목숨을 바쳐 쳐들어오는 왜구를 막은 흔들리지 않는 애국심의 사나이였으며 그가 군인정신의 표상이기 때문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에 대해 아직까지도 열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이 이번에 읽은ꡐ칼의 노래ꡑ에 쓰여져 있다고 감히 말할수 있을 것 같다.
ꡐ칼의 노래ꡑ에서 나타난 이순신
`칼의 노래`는 간결하고 남성적인 문체로 쓴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역사소설의 웅장함을 위해서는 보통 전지적 시점을 사용하여 작가가 시시콜콜히 모든 사항들을 다 설명해주는데 반해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일인칭 시점을 사용해서 당시 시대상과 더불어 역사이면에 숨겨진 허무와 졸렬한 세상과의 갈등으로 인해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에 대해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단지 이순신을 애국심이 강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인물로 그리지는 않았다.

1. 충무공 이순신에 대하여

2. 칼의 노래에서 나타난 이순신

3. 칼의 노래에서의 칼의 의미

4. 주요 내용 및 느낌

5. 칼의 노래를 읽고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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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선생의 <칼의노래1,2>는

"충무공의 칼은 인문주의로 치장되기를 원치 않는 칼이었으며, 정치적인 대안이나 목적을 설정하지 않는 칼이었다. 그의 칼은 그저, 다만 조국의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 위한 칼이었을 뿐이었다"라는 어느 평전가 말을 공감하게 된다.

꼭 읽고 싶었던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여행>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 기회를 엿보던중 <칼의노래>를 먼저 만났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드라마에 비친 충무공을 명확히 논단할 수 없고 연출자의 기획의도 역시 논 할 수는 없다.

<칼의노래>
충무공은 서슬프런 칼날을 바라보며 거듭된 번민에 휩싸인다.
"적은 나를 죽여야만 살고 나는 적을 죽여야만 산다"는 의문과
"살아서도 돌아갈 곳 없다는 고뇌"는 죽음이야말로 그가 진실로 돌아가길 원했던 해답으로 이어진다.
왜, 김훈선생은 충무공을 일인칭작가시점으로 변신시켜 무엇을 대변코저 하였을까.

김훈.
지난여름 남북작가 100여명이 백두산에 오를때 그도 백두를 밟는다.
민족작가회 회원인 선배이자 시인 정일근과 막역한 사이로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시대의 최고의 문장가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김훈이라고 답한다.(정일근,김훈은 모두 기자출신인데 정선생은 시인으로 김훈선생은 소설가로 살아간다)

그는 눈이 살아있는 인문주의자이다.
그가 굳게 입을 닫고 있을때 그는 고민하는 중이고 그 고민은 글로 드러난다.
칼의노래는 김훈의 노래였고 그 노래를 따라 불러 보는 것도 이 가을에 적합해 보인다.

 

 

본문의 일부

 

성난 파도와도 같은 한없는 적의가 어떻게 적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작동되는 것인지, 나는 늘 알지 못했다. 적들은 오직 죽기 위하여 밀어닥치는 듯했다. 임진년에 나는 농사를 짓듯이, 고기를 잡듯이, 적을 죽였다. 적들은 밀물 때면 들이닥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적들이 멀리 물러간 밤에, 나는 때때로 일본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생각했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었고, 그의 모습은 내 마음에 떠오르지 않았다. 생포된 적의 장수들을 주리 틀고 지져서, 히데요시에 관한 소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라는 일본 천하의 맹수가 다케다 신겐이라는 또 다른 맹수의 진영을 모조리 죽이고 일본을 차지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가신의 칼에 죽었다. 그러자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정권의 수뇌부를 몰살하고 일본의 관백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 천하의 모든 창검과 총포와 군사는 히데요시의 휘하로 총집결했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있었는데 그 뜻은 무武를 천하에 펼쳐서 난세를 치세治世로 바꾼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천하포무 깃발을 인수했다. 히데요시는 스스로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하고 있는데, 그 천하포무는 조선과 명을 아울러서 가지런히 하는 것이며, 조선의 국토를 여러 봉토로 찢어서 일본 막부의 가신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히데요시의 전후 조선 경영 구상이라고 적장들은 실토했다.
 히데요시는 그러하되, 물 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이나 무武라기보다는 광狂에 가까웠다. 때때로 내 지휘의 위치가 진陣의 후미일 때 내 부하들의 창검에 풀처럼 베어져나가는 적병들의 모습과 깨어진 적선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던 피의 물결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 죽음 너머에서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히데요시를 생각했다. 그때도 히데요시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히데요시는 또 다른 길삼봉이었다. 알 수 없었고 벨 수 없었고 조준할 수 없었다. 벨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나는 다만 적의 종자를 박멸하려 했다.
 임진년 바다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가장 확실하고 가장 절박하게 내 목을 조여 오는 그 거대한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내 적이 나와 나의 함대를 향해 창검과 총포를 겨누는 한 나는 내 적의 적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 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싸움이 끝나는 저녁 바다 위에서, 전의戰意가 잠들고 살기가 빠져나간 함대는 비로소 기진했고 노을 헤치며 모항으로 돌아가는 항해 대열은 헐거웠다.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