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성도를 받는 문제와 용서하는 문제와 사랑하는 문제에 대하여:
에베소서4장32절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인자하게 대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은 성도를 받는 것을 말한다. 빌레몬서 1장 12절에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여기에서 내 심복이라는 말을 빌립보서 1장 8절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의 단어이다. 로마서 14장에서는 형제를 받되 그리스도에 따라 받으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받으신 것은 그분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 따라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따라 형제를 받아야 한다.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이렇게 받기를 원했다.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형제들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과 같아야 한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모두에게 해를 비추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비를 내리신다.( 마5:45) 그리고 주님은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14:17) 왕국 생활은 형제를 받는 생활이다. 우리가 형제를 어떻게 받느냐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말해 준다.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태복음은 왕국을 말하는 책이다. 왕국을 말하는 책인 마태복음 18장에는 형제를 용서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교회는 사랑하는 단체이다. 교회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체이다. 오늘날 교회 생활은 왕국 생활이다. 왕국 생활은 서로가 기준을 가지고 다른이들에게 요구하는 생활이 아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다른이들에게 요구가 없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어떤 어린성도들도 멸시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한 소자(어린성도)를 실족케 하는 사람은 잘려져야 한다고 하셨다.(마18:6) 오늘날 교회 생활은 왕국의 실재이다. 왕국의 실재 안에서 표현되는 것은 용서이다. 그리고 장래 왕국의 출현 안에서 표현되는 것은 공의이다.
마태복음 18장 에는 죄를 범한 사람과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 여기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의 증세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죄를 범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범한 사람의 치료 방법은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알아듣고 주님께 형제를 몇 번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주님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그 다음에 빚진 자의 예가 나온다. 만일 자기에게 죄진 자를 조금도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도 그 사람을 조금도 용서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주님은 호리라도 갚지 아니하면 결단코 거기에서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가 결코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빚을 다 갚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의 빚을 다 갚아 주셨는데 만일 우리가 다른이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우리가 우리자신의 빚을 다 갚을 때가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마음에서 형제들을 용서하면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값없이 용서받는 것은 이 시대에서만 가능하다. 다음 세대에서는 더 이상 값없는 용서가 없을 것이다. 다음 세대에서는 호리라도 갚지 아니하면 결코 나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명령은 첫째 "주 예수를 믿으라" 이고 둘째는 "서로 사랑하라" 이다.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로서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사랑은 우리가 얻은 생명을 살아내는 것으로 우리로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살게 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비밀한 것이지만 사랑은 우리의 생활 중에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행위의 문제이다. 주님은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까지도 버리라고 하셨다. 이렇게 사랑은 밖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우리의 행위의 문제이다. (앤드르 유형제님)
'신앙 간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화목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세종류의 전병들 (0) | 2006.07.03 |
---|---|
[스크랩] 동역자 형제님의 교통 내용-1 (0) | 2006.07.03 |
[스크랩] 우리는 다 기도를 소홀히하는 죄를 범했다. (0) | 2006.07.03 |
[스크랩] 연습 (0) | 2006.07.03 |
[스크랩] 보혈로 날씻으사-228장 (0) | 2006.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