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바른 독서지도 - 남미영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동화작가)
자식에 관계된 이미지 중에 부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는 아마 책을 읽고 있는 자녀의 모습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책을 읽고있는 모든 부모들은 책을 읽고 있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 희망적인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독서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이미 부모들이 경험하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독서의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책의 내용이 주는 사상과 철학으로, 이는 독자의 인격을 바르고 풍부하게 해준다. 둘째는 책을 읽는 동안에 길러지는 상상력, 창의력, 추리력, 비판력, 판단력 등의 사고력의 신장으로, 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초기능이 된다. 책의 내용이 주는 이점의 문제는 널리 알려진 것이므로 생략하고, 여기서는 독서하는 동안에 길러지는 사고력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유태인의 경전 탈무드에는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비유를 풀어보면 자식에게 결과를 주지 말고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을 다시 요즘의 교육 현상에다 대입시켜보면, 머리 속에다 지식을 넣어주지 말고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지식을 얻는 방법이란 곧 생각하는 능력, 사고력인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교육에서 각종 시험이란 무엇을 얼마나 알고있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지식의 양에 따라 입학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알고 있나' 보다는 '알 수 있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즉 알고 있는 지식의 고정된 양이 아니라, 알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 가능성은 다름 아닌 학생이 가지고 있는 사고력이다. 금년부터 실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 방향이 바로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인 사고력을 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읽는다는 것은 의미의 재구성 작업이다. 독자가 국민학교 1학년이든 대학생이든 간에 읽는 과정에 접어들었다면, 그는 글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의미 파악이 동반돼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라 단순한 글자 읽기에 불과하다. 의미의 파악은 그냥 읽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우선 독자는 글자나 단어를 판독해야 하고, 글자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들 여러 단어들의 상호관계를 분석하고 종합하고, 더 나아가 이 모든 정보들보다 한 차원 높고 추상적인 중심내용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의 입장에서 글의 내용에 대한 비평도 해야 한다. 이러한 독서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독자의 두뇌는 맹렬한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사고력이라고 한다.
읽기 활동의 전 과정은 글자로 표현된 것을 장면으로 상상해야 하고, 단어가 주는 힌트를 가지고 상황을 상상해야 하고, 글속에 문자로 기록되지 않는 내용을 창의적으로 생각해 보아야하고,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찾아야 하고, 글의 내용이 옳은 것인가를 비판해 보아야 하고, 글의 내용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며, 잘못된 점을 마음속으로 수정해야 하고 이렇게 쓸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많은 과정을 거치는 동안 독자의 사고력은 자연히 발달하게 된다. 그래서 옛부터 읽은 책의 양과 사고력은 비례한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는 독서 연구가들에 의하여 증명되기도 하였다.
세계 제2차세계대전 패망 후 일본 사회에는 '책을 읽는 국민은 발전하고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은 퇴보한다.'는 문구가 유행했었다.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유행시킨 것인지 자연스레 유행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후 그들은 40년만에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다.
2)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축적하는 일이다
두 사람이 똑같은 책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읽더라도 얻게되는 정보의 양은 서로 다르다.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에게 같은 책을 가지고 공부한 학생들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그들이 선생님에게 얻은 정보의 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게되는 정보의 양이 서로 다른 것은 독자의 사전지식이 독서과정과 독해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즉,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주체는 독자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사전지식의 다소에 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글의 의미는 씌어있는 문자에 있지 않고 독자의 머리속에 있으며, 독서는 언어기호의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독자의 능동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글을 읽고도 얻는게 적은 사람들은 글자나 단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전(事前)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학생이 "러시아는 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산화되었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러시아의 동화나 소설, 위인전을 읽은 적이 있는 학생은 제정 러시아 짜르정권 300년 동안의 농노들의 비참한 생활과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억눌린 자들의 폭동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왜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평등을 부르짖으며 공산화되었는지를 추론하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책을 읽은 기억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추론할 수 가 없어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게 된다. 이러한 추론의 능력은 바로 독서가 주는 사전 지식에서 온 것이다. 이와 같이 독서량의 다소가 읽기 능력의 다소를 결정하게 되는 것은 읽는 과정에서 얻게되는 정보의 양 때문이다. 결국 많이 읽은 사람이 많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권할 확실한 보물은 독서이다.
3) 읽기 능력은 나이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같다고 읽기 능력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읽기 능력은 나이와는 상관없다. 몸은 어른인데 독서능력은 어린아이인 사람들이 있고, 몸은 아이지만 독서능력은 어른인 경우도 있다. 독서능력은 독서의 양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던 학생이 종종 대학에 가서는 열등한 학생으로 뒤쳐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읽기 능력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공부가 인류가 이루어 놓은 과거의 지식을 암기하는 것인데 반하여, 대학의 공부는 가능한 세계에 대한 탐구이므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대학의 교수들은 그동안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커다란 어린아이들을 놓고 강의를 하는 고통을 당해왔다. 금년부터 실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입학의 자격을 기억하고 있는 지식의 양으로 재지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사고력의 양으로 재겠다는 의도를 가진 시험이다. 사고력은 읽기 능력에 비례한다.
2. 무엇을 읽힐 것인가?
일찍이 어느 나라 어느 시대가 오늘날처럼 심각하게 책의 질에 대하여 고민하던 때가 있었을까? 오늘날 아동도서는 하루에도 수십종씩 출판되고 있다. 어린이 책은 어른의 책처럼 휴지 같은 책으로부터 보석 같은 책까지 각양각색이 있다. 이렇게 범람하는 책들 속에서 어떤 책을 읽히고 어떤 책을 뽑아버린다는 도서 선택은 오늘의 기성세대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이 장에서는 좋은 어린이 책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제시해 본다.
1)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이 담긴 책
만일 어떤 책이 열 살에 읽고, 스무 살에 읽고, 서른 살에 다시 읽어도 읽을 가치가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만일 어떤 책이 한국의 어린이도, 미국의 어린이도, 소련의 어린이도 똑같이 좋아한다면 그 책은 좋은 어린이 책이다. 그러나 어떤 책이 그 시대, 그 지역에서만 반짝 읽히다가 사라진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아동도서의 역사를 살펴볼 때 어린이 책도 어른의 책처럼 시대적 특징과 사회적 특징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15세기 서구의 어린이 책은 강요된 신앙심을 주제로 하는 기독교 문학이었으며, 1950년대의 한국의 어린이 책은 반공사상으로 뒤범벅이 된 목적문학이었으며, 현재 북한의 어린이 책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작업의 도구가 된 도구문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그 시대, 그 지역을 벗어나면 읽히지 않는 책이 되고 만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 책들인데, 그 원인은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또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책들은 한철만 반짝 읽히다가 잊혀지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들도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이 결여되어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는 책-그것을 우리는 고전, 혹은 명작이라고 부른다.
2) 이니시에이션 스토리가 담긴 책 (Initiation story)
모든 어린이는 성장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육체와 정신이 함께 성장하려는 욕구, 이러한 어린이를 도와주는 글의 형태가 이니시에시션 스토리다. 이니시에시션 스토리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보잘 것 없는 보통 아이가 훌륭한 인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문학의 한 형태이다. 어린이들은 이런 이야기 속의 어린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주인공과 함께 체험하며 성장한다.
어떤 의미로 보아 모든 아동문학은 이니시에이션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영웅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영웅전은 분리-시련-입공(入功)-귀향의 4단계로 구성된다. 한 어린이가 가족을 떠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갖가지 시련 속에서 적과 용감히 싸워 큰공을 세우고 금의환향하는 골격을 기본으로 하는 영웅전은 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며, 보통사람이 어떻게 위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처음의 어린이가 비범하면 비범할수록 영웅전의 효과는 절감된다. 반대로 보통아이나 보통 이하의 어린이가 성공하는 이야기에서 어린이들은 보다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의 영웅전은 이런 점에서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전은 빛나는 가문, 뛰어난 용모, 영특한 머리를 가진 어린이가 성공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강감찬 장군이나 한석봉처럼 못생긴 아이나 가난한 아이의 성공담일 경우에는 반드시 몰락한 양반의 후예라는 사족을 달아 신분이동의 불가능을 못박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한국 어린이들에게 불행감을 주고있다. 가난하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에게는 좌절감과 열등감을 주어 초기에 꿈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며, 부잣집 아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조건을 상실했을 때에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면 1986년 부산의 한 어린이는 1학년에서 5학년 까지 반장을 했는데 6학년이 되어 반장에서 떨어졌다고 자결을 택해서 세인을 놀라게 한 사건이나, 대학입시에 떨어져 자결의 길을 택했던 청소년들의 예는 모두 한국의 신동 위인전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이 아닌가 한다.
이에 반해 서구의 영웅전은 보통아이나, 낙제생들이 성공하는 이야기가 많다. 못생기고 가난한 링컨, 못생긴 안델센, 학교성적이 좋지 않아 학교로부터 추방을 당했던 에디슨과 아인쉬타인, 가난뱅이 카아네기 등 수많은 위인들이 열등아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 나라 위인들이 특히 신동으로 태어나는지는 몰라도, 어린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보통아이들이 성공하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을 것이 분명하다.
책이나 문학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열등감을 주고 좌절감에 빠뜨려 불행하게 하는 책은 이제 추방해야 할 것이다.
3) 탐색 스토리가 담긴 책
어린이의 또 하나의 특징은 궁금증일 것이다. 저 산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 어린이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찾고 싶어한다. 우리가 공부하고 탐구하는 해동도 일종의 궁금증일 것이다. 모든어린이 책은 탐색스토리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전래동화(민담, 전설 포함)가 그 대표이며, 탐험물과 탐정물은 아류가 될 것이다.
전래동화는 탐색의 과정으로 되어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것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끝없이 찾아 헤매는 전래동화의 주인공들은 세 단계의 함정을 무사히 건너야 한다. 첫째 함정은 목마름이나 배고픔으로 상징되는 입의 욕구이며, 둘째 함정은 아름다운 미인으로 상징되는 성(sex)에 대한 욕구이며, 세 번째 함정은 수수께끼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지혜에 대한 시험으로 볼 수 있다. 전래동화에 나타나는 세 가지 함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물질에 대한 시험, 성에대한 시험, 지혜에 대한 시험으로 볼 수 있는데, 전래동화의 주인공은 이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만 행복의 상태에 다다른다.
전래동화의 이와 같은 구성원리는 인생원리의 축소판이다. 가끔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뇌물사건, 부정부패사건은 첫째 함정인 물질의 욕구라는 함정을 뛰어넘지 못한 경우이며, 유명 인사들은 하루아침에 침몰시키는 섹스 스캔들은 두 번째 함정인 성의 욕구라는 함정을 뛰어넘지 못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 두 함정을 통과하더라도 세 번째 함정인 지혜의 함정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의 대인관계, 수시로하는 판단과 선택 등은 우리의 인생이 많은 지혜를 요한다는 상징이 된다.
전래동화를 읽는 동안 어린이들은 이러한 현실원리와 진실을 눈치챌 수 있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4) 상승 모티브가 있는 책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문학을 읽는 다.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인간은 그 속에서 자기의 행복에 필요한 알맹이를 골라 갖게 된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문학에는 인간의 불안감이나 고통이나 마음속의 갈등을 씻어주고, 보다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어떤 요소가 들어 있다. 이 어떤 요소를 우리는 상승 모티브라고 한다.
수천권의 어린이 책에는 상승 모티브가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안델센의 동화와 이솝 우화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안델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등에는 외로움, 그리움, 배고픔 등의 고통에 대한 해결이 작품의 후반부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안델센의 작품을 읽는 독자는 문제 해결과 함께 좀더 밝은 세계를 경험함과 동시에 기쁨과 행복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솝 우화는 이와 반대현상을 독자에게 준다. 대부분의 이솝 우화는 문제해결 보다 죽음과 파멸, 보복과 조소로 장식되어 있다. 이솝 우화가 가지고 있는 절망적인 결말은 독자에게 어둠과 답답함을 경험하게 한다. 즉, 이솝 우화는 상승모티브가 결여된 문학이다. 호랑이는 천길 만길 구렁텅이 속에 빠지며, 당나귀는 소금섬을 지고 물 속에 거꾸러지며, 게으른 암소는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거짓말쟁이 목동은 늑대에게 잡혀 먹힌다. 어떠한 희망과 구원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작품에서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보다는 절망과 좌절을 맛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의 계속적인 독서는 어린이의 정서에 영향을 주어 우울한 성격, 절망적인 미래관, 보복적 사고 등을 길러 줄 우려가 있다.
5) 높은 교육성을 가진 책
훌륭한 문학작품은 독자에게 삶에 필요한 갖가지 철학을 선사한다. 그 철학들은 유익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에 어느 문학작품이 독자를 퇴보시키고 타락하게 한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이렇게 독자를 보다 나은 철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특성이 문학의 교육성이다.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교육자이다. 그러나, 위대한 교육자가 다 위대한 작가는 아니다." 이 말은 문학의 교육성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의 교육성은 어디까지나 결과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문학의 교육성은 감동의 옷을 입고 있지 도덕이나 교훈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아동문학의 교육성은 선의식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다시말해, 권선징악이라는 하나의 틀을 가지고 있다. 착한 콩쥐와 착한 흥부가 복받고, 착한 은철과 은주가 부모를 찾는 이야기다. 착하지 않은 팥쥐와 놀부는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들의 성공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정서이다. 따라서 착하지 않은 인물은 배울 것도 없고 교육성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인생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착하지 않은 인물이 마음을 돌려 착해지는 과정에서 더욱 감동을 받고 배우는게 많아진다.
서구의 아동문학은 미의식을 중요시한다. 불쌍한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되고, 말썽꾸러기인 톰소여가 큰 일을 해내며, 약속을 잘 잊고 제멋대로인 피노키오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다. 이러한 차이는 철학적 배경의 차이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모습이 다르며, 교육성의 질이 다르다. 서구인들의 교육성은 개성, 진취성, 창의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므로 말 잘듣는 아이보다 제멋대로인 아이가 성공하는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다.
선의식에서 오는 교육성은 독자를 규범적인 인물로 만들지만, 미의식에서 오는 교육성은 독자를 창의적이게 한다. 우리 문화권도 이제 미의식에서 오는 교육성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6) 독자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책
(1) 암시적 발단
: 어린이는 몰염치스러울 정도로 즐거움을 위해서 읽는 독자다. 어떤 독재자도 그들에게 재미없는 작품을 읽게 할 능력은 없다. 어린이들에게 계속 읽혀오고 있는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중의 하나가 암시적 발단이다.
훌륭한 발단은 첫째로 궁금증을 수반해야 한다. 무언가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발단, 스펀지처럼 많은 이야기를 흡수하고 있는 듯한 발단, 조그만 끈 하나만 잡아당기면 이야기가 줄줄이 끌려올 것만 같은 발단. 이러한 발단은 독자를 쉽게 작품의 세계로 인도한다.
둘째는 흥미 있는 발단이다. 여기에서의 흥미는 농담이나 장난, 이상함이나 괴상함, 혹은 무서움에서 오는 흥미가 아니라 새로움에서 오는 경이(驚異)를 의미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E.T등은 그 좋은 예이다.
셋째는 간결한 발단이다. 어린이의 집중력은 3분을 넘지 못한다. 4∼6세 어린이의 집중력의 한계는 30초라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이러한 어린이들을 작품 속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간결한 발단이 필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길고 긴 이야기가 들어있는 발단, 복문으로 시작되는 발단에서 어린 독자는 눈을 돌린다.
(2) 남다른 주인공
: 작품에서 독자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스토리나 주제가 아니라 인물이다. 또 가장 나중까지 남는 것도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만난 매력적인 인물들은 우리가 함께 놀고 공부 한 적이 있는 친구보다 더 생생하게 우리의 의식과 인생을 지배한다.
위대한 문학작품은 위대한 주인공의 창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이 '남다른 주인공'이다. 즉, 모든 훌륭한 아동문학에는 남다른 용모, 남다른 환경, 남다른 성격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평범한 용모, 평범한 환경, 평범한 성격의 주인공은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독자의 머리 속에 뚜렷이 부각되는 인물은 독특한 면을 가진 개성적인 인물들이다.
남다른 주인공의 창조를 위하여 전래동화는 잘생기고 용감한 왕자와 공주가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대로 내려올수록 주인공의 신분이 하향기세를 보여 보통, 혹은 가난한 가정의 아이, 못생긴 아이, 이상한 성격의 아이가 많이 등장한다.
(3) 수평적 문장
: 독서란 작품 속에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와 독자가상하관계 내지 주종관계에 있다면 독자는 능동적인 독서과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동적인 독서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작가가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독자에게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고 가르쳐준다면, 독자는 작가와 상하관계, 주종관계, 수직적 관계에 놓이게 되어 독자의 상상력은 위축된다.
독자란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내는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작가가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혹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등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주는 수직적 문장은 금물이다. 이런 문장에서도 독자는 재미와 기쁨을 느낄 수없게 된다.
(4) 열린 결말
: 모든 작가와 모든 화가 그리고 모든 출판업자는 자기의 책이 오래오래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명작의 명예를 얻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 중에 몇몇 작품만이 독자를 사로잡고 독자에게 기억될 뿐이다. 독자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에는 '열린 결말'의 작품들이 많다. "행복하게 살다 죽었습니다.", "늑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식의 닫힌 결말은 독자의 사고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서도 쉬이 잊혀진다. 특히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에게 열린 결말은 필수적이다.
(5) 독자의 몫
: 독서란 일종의 언어적 추측게임이다. 작가가 언어로 제시하는 상황을 따라가며 작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고,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추측해가는 것이 독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누가 설명해 주는 문장에서는 기쁨을 얻지 못한다. 독자는 자기가 추측하고, 상상할 부분이 많은 문장에서 기쁨을 얻는다. 예를 들면 독자는 다음 두 문장에서 얻는 것이 다르다.
"링컨은 언제나 복숭아뼈가 쑥 나오는 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링컨은 키가 크고, 가난하며 사치하지 않고, 불평을 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첫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링컨의 외모와 환경, 성품 등을 독자 나름대로 추측해 볼 수 있게 하는 탄력적인 문장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작가가 말해주는 것 외에는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추측할 필요도 없는 굳은 문장이다. 독자는 이러한 굳은 문장에서는 할 일이 없어 심심하게 된다. 작품의 우수성은 작품의 그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의 상호 관계에도 있다는 것이 현대의 수용미학적(受容美學的) 관점이다.
7) 아름답게 만든 책
(1) 그림
: 어린이 책의 그림은 글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어른의 책은 그림이 책의 질을 좌우하지 않지만, 어린이 책은 그림의 질이 책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선, 좋은 그림은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 그림이다. 그림만 보아도 이야기가 술술 나올 수 있는 그림, 글씨가 없어도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 그림. 이런 그림들은 글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여 글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 글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여 놓은 그림이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야기가 숨어있지 않은 그림은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창의성을 길러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에는 예를 들어 똑같은 안델센 동화일 경우에는 그림이 좋은 것으로 고르는게 현명한 일이다.
두번째로, 좋은 그림은 색깔이 은은하고 부드러운 것이다. 원색을 많이 썼다든지 검정색이나 진한색을 많이 쓴 그림은 어린이들을 쉬 피로하게 한다. 색채심리학에 의하면 강렬한 원색을 많이 본 어린이는 성격이 날카롭고 참을성이 없다고 한다. 부드럽고 우아한 색의 그림을 대하면 어른들도 가슴이 환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아이들의 영혼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세번째로, 좋은 그림은 사람의 얼굴이 악독하지 않게 그려진 그림이다. 악독한 얼굴표정의 그림은 어린이의 마음에 우울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너그럽고 푸근한 표정, 넉넉하고 순한 표정, 부드럽고 우아한 표정의 그림들이 우리 아이들을 아름다운 인품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네번째로, 좋은 그림은 외국인의 모습보다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그린 그림들이다. 한국의 도서 경향이 지나치게 외국물에 의존해 있어서 알게 모르게 우리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얼굴이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라고 하면 모두 서양여자의 얼굴을 그려 놓는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얼굴을 찾기 위하여 한국인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2) 종이와 글씨
책의 본문은 미색 종이에 진한 갈색의 글씨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러나 미색 종이에 검정색 글씨도 무난하다. 요즘 책방에 가보면 지나치게 흰 종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어린이의 눈을 쉬 피로하게 한다. 눈의 피로는 눈의 건강상에도 좋지 않으나 독서를 기피하는 현상에도 관여한다.
한글은 띄어쓰기를 하는 어절들이 의미의 단위가 되어서 글씨꼴의 힘을 빌어서 글줄을 형성한다. 따라서 어절은 읽힘성의 핵심인 독서자료의 기본단위가 된다. 글줄과 관련시켜 살펴볼 때, 아동도서의 경우 지나치게 짧은 문장이 많이 쓰이고 있어서 의미의 흐름에 단절이 생겨 읽힘성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한 글줄에 최소한한 의미가 수용되어야 하는데, 많은 어린이 책에, 특히 유아도서 등에 의미가 불완전한 짧은 문장들이 등장하여 읽힘성을 방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미는 뛰어 갔어요. 아빠가 웃고 있어요. 영미는 아빠에게 안겼어요." 이 세 문장은 지나치게 짧게 끊겨 있어서 읽힘성이 약하다. 이 문장들은 "아빠가 웃고 있어요. 영미는 아빠에게 뀌어가 안겼어요."로 고치면 읽힘성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