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sseam
2010. 3. 19. 03:12
공정의 양면성 |
글쓴이 : 장소망
(220.*.*.7) 날짜 : 2010-03-18 18:34:59 조회 : 11 |
역사는 객관적일수도 주관적일수도 있는 학문이다. 그것은 문헌자료, 고고학의 발굴성과 등이 있다고 해서 옳다고도 그렇다고 아닐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료가 있고 수많은 지역에서 발굴되고 있는 역사를 나타내는 유적 유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일까? 아마도 역사를 대하는 역사가의 생각과 태도 일 것이다. 자료가 아무리 많고 정확하다고 해도 그 사료를 다루는 사람이 자신의 역사관을 지킬 것인가 아닌 것인가가 좌우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 수업은 중국의 문명의 시대에 대해서 배웠지만 정확히 말하면 문명의 탄생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의 문명을 시작하려면 하(夏), 상(商), 주(周)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이것은 중국의 고대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고 과연 실존 하였는가 라는 의문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중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포함한 서양의 학계에서의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3대(代)의 관한 가장 큰 관심이자 논란이기도 한 하상주단대공정의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원전 1세기 사마천이 서주(西周) 공화(共和) 원년(기원전 841) 이전의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천명한 이래 중국 고대 기년(紀年) 문제는 오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 공화 이전의 연대에 대해서 많은 견해가 나왔지만 결론이 쉽게 도출되기는 어려웠다.
중국은 1996년부터 정부의 강력한 지원 하에 착수된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서주 공화 이전부터 하(夏) 왕조 성립 시기까지의 연대 재구성을 목표로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공정은 2000년 그 결과인 “하상주단대공정 1996~2000년계단성과보고” 의 내용 가운데 “하상주연표“를 통해 (하夏 기원전 2070~기원전 1600년), (상商 기원전 1600~기원전 1300년),(상후기 기원전 1300~ 기원전 1046년), (주周 기원전 1046~기원전 771)의 연대를 확정 지었다.
하지만 공정에 대해 서양의 학자들의 반발이 있었고 심지어 기년(紀年)이 틀렸다고 까지 말한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단대공정이 학술 프로젝트가 아닌 정치적 성향을 띄고 이루어진 프로젝트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역사의 연대를 결정짓는 문제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이면 안에는 정치적 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9년 신 중국 성립이래, 중국은 전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성과는 서양학계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중국의 사학계, 고고학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것은 “중국문명의 서방기원론”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고고발굴은 사회주의 체제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중국의 “국가 5개년 계획”이 연관되어 있다. 그 결과 9.5계획 에서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발전이라는 전제를 강조하고 10.5계획은 경제적 발달에 따른 정신문명과 국민소질 함양의 발달을 강조하고 있다. 5개년 계획은 단순히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른 정신문명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중국의 역사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 시킨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변강역사여한상계열연구(동북공정)이 국가 주도하의 연구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중화주의”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일련의 작업인 공정이 국가의 의도적인 전략을 내포하고 있으며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한 단대공정의 성과를 기반으로 한 중국역사는 시간적 확장이며, 동북공정은 역사적 공간의 확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발전은 여러 집단은 공동 참여라는 고고학 성과가 입증 되었고 “동아시아 중국기원론” “중국문명의 중국기원론” 의 설득력을 상실하고 중화사상의 근거가 흔들렸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하상주단대공정은 동아시아 세계에서의 “중국 중심” 중화 민족의 자신감 회복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하상주단대공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보이는 성과뿐만 아니라 다른 면을 강조하고 싶었다. 동아시아 삼국은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장 알리고 싶은 부분은 국가 주도하에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문제이지만 문제를 밝혀내는 것이 국가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좌지우지 되고 자신의 역사 관념을 지켜야 하는 역사학자마저도 거기에 동참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역시도 국가적으로 역사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대응은 명확하지가 않다. 하상주단대공정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이면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이를 키우려고도 하지 않는 우리나라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 |